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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분도 ‘카코포니 셔플카드’전

정지윤 작 ‘아파트 신화’

갤러리 분도가 매년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열어온 ‘Cacophony'(불협화음)전시가 올해로 15번째를 맞아 ‘Cacophony:Shuffle Cards’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올해의 전시명은 카드 게임에 비유하자면 ‘다시 패를 섞는다’는 의미로 가능성을 지닌 작가들의 실험성 있고 참신한 조형언어를 수용해 미술담론을 이끌어가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우선 박규석의 작품 ‘달빛중독’을 보면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숲길에서 마주한 감정을 펼쳐 보인다. 그 이미지는 판타지에 가깝다. 일상의 풍경은 아크릴과 오일, 락카 같은 색 재료로써 구별된 층위로 겹쳐지고 현실을 비추는 회화 소게서 달빛은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사회구조로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제안하며 관객이 달빛에 물든 스스로의 이야기를 완성할 조건을 화면 속에 장치해 둔 셈이다.

박운형의 ‘정원’은 권태로운 하루를 콜라주 형식으로 그린 아주 사적인 것들의 집합체이다. 등굣길 색 바랜 표지판, SNS에 스쳐가는 이미지, 집에서 키우는 식물 등 일상에서 모은 이미지들은 작가의 손끝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작가가 꿈꾸는 ‘정원’은 역설적이게도 단조로움과 거리가 먼 자유롭게 유쾌한 감정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윤보경의 ‘서랍장’은 화려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형형색색의 서랍장에서는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바로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주변에서 채록한 인터뷰 사운드를 어린 시절에 그랬듯 서랍 속에 숨긴다. 여기서 작가는 화려한 것들 속에 감춰진 추악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강조함으로써 그 실천이 예술행위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정지윤의 ‘아파트 신화’는 아파트라는 주거환경 속 삶을 인질처럼 비유하는 묘사로 이루어진다. 그 자체가 자산이지만 동시에 긴 시간 동안 갚아야 되는 빚 덩어리로서 아파트라는 현실은 안락하지만 구속된 삶임을 드려낸다.

현미는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의 변이과정을 캔버스에 옮기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공사판의 비계와 방진부직포는 더 이상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이미지들은 뇌리 깊이 자리 잡은 옛 풍경과 겹친다. 이때 작가가 느낀 상실감은 그 자체가 특별한 건 없다. 다만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본 이로부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여기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시는 8월 31일(토)까지.

매일신문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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