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시간 : am 10:30– pm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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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고 쓰면서 ‘비우다’…갤러리분도, 설치미술가 김승영展
김승영 ‘쓸다(Sweep)’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사유와 치유의 묵직한 공간 재창조…현대인 감정·삶 담아내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우선 청각이 자극된다. 빗자루로 쓰는 소리와 새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고 싶어진다.

이곳은 다음 달 7일까지 선보이는 설치미술가 김승영의 개인전 ‘Reflections’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분도 전시장이다.

빗자루 소리를 뿜어내는 정체는 바로 ‘쓸다 Sweep’이라는 제목의 영상 작품이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의 스님이 새벽녘 비질하는 모습을 촬영한 작품이다. 스님은 매일 새벽마다 사람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쓰레기가 없는 듯 보이는 마당을 쓸어내린다. 일정한 간격과 속도를 유지하며 이뤄지는 이 반복적인 행위는 스스로를 비워내기 위한 수행의 다른 이름 같다.

눈을 돌리면 텅 빈 공간에 덩그렇게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설치 작품 ‘쓰다’이다.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젝트형 작업으로, 책상에 놓인 종이 위에 자신이 비워내고 싶은 마음의 잔해들을 적은 후 구겨서 옆에 둔 쓰레기통이나 바닥에 버리면 된다. 그러면 작가가 그렇게 버려진 종이를 일일이 펴서 공간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잠시 자기에게 집중하며 저마다의 속 얘기를 쓰거나, 그냥 앉아 머물러도 좋다.

반가사유상(왼쪽)과 김승영 작 ‘슬픔 Sadness’. 갤러리분도 제공

정수진 갤러리분도 큐레이터는 “‘쓰다’와 ‘쓸다’가 중의적으로 포개진 작가의 작업 ‘쓸다 Sweep’은 쓰다와 쓸다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쓰기와 쓸기는 행위는 다르지만,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로 보는 작가의 시선이 의미가 서로 통하기에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재해석한 작품인 ‘슬픔 Sadness’가 자리한다. 무너진 붉은 파벽돌, 이끼 위에 슬픈 표정의 부처상이 놓여있다. 반가사유상의 미학을 섬세하게 재현하면서 비틀었다. 오른손의 위치를 마치 눈물을 훔치는 것처럼 옮기고 입꼬리를 슬쩍 밑으로 끌어내려 ‘슬픔’을 강조했다. 슬픔은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고뇌하고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반가사유상 속 슬픔이라는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관객에게 말을 건네고자 하고, 우리 삶 속에 만연한 불안과 상실감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게 한다.

‘뇌’라는 설치 작품도 무척 인상적이다. 쇠사슬로 만든 뇌의 형상이 녹슨 저울 위에 올려져 있다. 뇌의 무게를 재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질량의 무게, 세월의 무게, 아니면 감정적인 용량의 무게를 재는 것일까. 오래된 저울의 눈금은 ‘0’을 가리킨다. 천근만근 무겁고 힘들게 느껴졌던 생각은 어쩌면 깃털만큼 가벼운 것일지 모른다. 현대인들이 각자 머릿속에 어디에 무게를 두고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는지 자신을 대입해 보게 만든다.

김승영의 작품은 기억, 삶, 소통, 치유 등의 인간의 감정과 삶을 담아내며 성찰과 위로, 감명을 준다. ‘Reflections’전은 갤러리분도의 올해 첫 전시로, 김승영은 2008년, 2012년에 이어 10년 만에 갤러리분도에서 그의 얘기를 풀어낸다. 김승영은 작은 전시장을 비움과 반성, 사유와 치유의 묵직한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 영남일보 : 박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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