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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나뭇가지를 추모하며…갤러리분도, 김희선 개인전
김희선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작 ‘비가(Elegy)’

손 모양 오브제와 연결하고 북채 제작
다양한 설치품 통해 자연과 공존 모색
파괴된 생명의 자정능력 담은 영상도
“인간 야만 꾸짖는 자연에 귀 기울여야”

섬머셋 몸은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성실한 사람도 가식이 있고, 고결한 사람에게도 비열함이 있으며, 불량한 사람일지라고 많은 선량함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며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모순적인 인간의 천성은 인공지능과 비교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합리적, 과학적, 이성적, 일관성이 인공지능의 표상이라면 인간은 그 대척점을 달린다. 합리와 비합리, 이성과 감성, 일관성과 비일관성이라는 이중성과 모순은 인간의 실존과 직결된다.

김희선 작가는 인간의 실존과 대면한다. 그가 특별하게 경험하고 감각하는 존재나 현상에서 인간의 모순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전시가 한창인 갤러리분도 개인전에 설치된 작품 ‘연접(Junction)’, ‘비가(Elegy)’, ‘변위(Displace)’에 주택 정원수와 관련된 그의 개인적인 사유가 녹아있다.

그의 정원에는 감나무, 호두나무, 무화과나무 같은 유실수 몇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에게 정원수는 수많은 벌레와 미생물을 품어주는 소우주였다. 하지만 문제는 나뭇가지가 담을 넘어 이웃집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발생했다. 평소에 이웃이 불만을 제기했고, 정기적으로 담벼락을 넘는 가지들을 잘라내야 했다. 문제는 그가 출타 중일 때 나뭇가지들이 비상식적으로 과도하게 잘려나간 것. 이웃의 의견이 반영되어 정원수의 몰골은 흉측하게 잘려 있었다.

“비상식적으로 잘려나간 나무는 후유증이 꽤 오래갈 만큼 충격이었어요.”

그의 작품이 설치된 갤러리 분도는 훼손된 정원수에 대한 일종의 추모관이다. 잘려나간 나뭇가지를 모아 작품으로 구현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무지함과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벽면에 걸린 작품인 ‘연접(Junction)’. 잘려나간 가지를 인간의 손과 연결했다. 전시장 바닥에는 나뭇가지와 발을 연결한 작품도 설치되어 있다. “저의 손과 발을 나뭇가지와 연결해서 나무들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관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더 많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비가(悲歌·Elegy)’는 스네어 드럼 인터액티브 작품이다. 금속 지지대 위의 작은 북과 잘려나가 마당에 나뒹굴던 호두나무 가지로 만든 북채로 작품을 구성했다. 관람자가 북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가 작동하여 나뭇가지로 북을 두드리는 형식이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장치와 같은 모터의 단순한 움직임은 잘려진 호두나무 가지들이 혼돈의 리듬을 그리고 경고의 신호를 만들도록 돕는 장치에요.”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기울게 된 호두나무에서 그가 본 것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사회, 정치적 관계, 문화적 속박, 인간 중심적 욕망으로 인류의 삶과 환경은 비틀어졌고, 제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 설 자리를 잃고 변위 되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환경파괴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낳았지만 자연의 힘은 위대하여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런 모습에 대한 이야기에요.”

작품 ‘비가’의 모티브는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이다. 3살의 나이로 성장을 거부한 오스카의 시각을 통해 나치즘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인 오스카는 어리석고 비정상적인 나치즘의 잔인성에 경악하며 양철북을 두드리며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푼다.

작가는 “‘만약 나무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작품 ‘비가’가 출발했다”고 언급했다. “자연은 아무 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말을 하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듣지 못할 뿐이죠. 양철북을 통해 인간의 야만을 꾸짖는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작품 ‘변위(Displace)’는 5분 분량의 3D 영상작품이다. 비정상적인 가지치기로 심하게 굽어져 성장한 호두나무의 실체를 3D 모델링을 통해 재현했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훼손된 자연 생태계와 생명이 스스로 균형 상태로 원상복구하려는 자정능력(自淨能力)마저 우리가 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죠.”

전시장 벽면에 붙여놓은 생성, 무한, 변화, 광명, 변이, 리즘, 연접, 변위, 내재성, 공속, 카오스, 균형, 무심, 소멸이라고 적혀있는 15개의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가 긴 시간을 두고 탐구하는 주제들이다. 이번 전시에선 15개의 단어들을 작품 ‘비가’에서 각각 모스부호로 번안하여 15개의 작은북들에 하나씩 리듬으로 프로그래밍 했다. “이번 전시에선 모스부호로 번안했지만 15개의 단어들은 제가 작업하며 계속 사유해야 하는 대상들입니다.”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트를 취득했다. 이후 른 미디어아카데미 대학원을 졸업하며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현재 영남대 트랜스아트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서울, 대구, 베를린, 쾰른, 뒤셀도르프, 비스바덴, 베이징 등에서 지금까지 총 17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업에서 1차 관문은 일상 속 경험이나 사건을 특별한 감정으로 자각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각양각색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낸다. 그리고는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내는 동시에, 개인사와 연루된 국가와 정치, 사회, 환경문제까지도 아우른다. 독일에서 경험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삶이나 특정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인지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 관점이 새로운 관점으로 진일보해가는 것이다. 작업의 출발은 사회에 팽배한 보편적 관점을 인지하는 것이며, 인지된 경험은 공간에 중첩된 시간성과 겹치며 가시화된다. “어떤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무언가에 대해서 하려고 할 때 거기에 대해서 존중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작업의 토대를 이루지만 과도한 기술사용은 절제한다. “과도한 기술 의존도가 과연 삶의 질을 높였는가?”에 접근했을 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에서다. 기술의 진보가 자연훼손, 인간소외 등의 부작용을 낳았음은 널리 인식되는 문제의식이다. 또한 과도한 기술이 작품과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생각도 기술을 절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던 시절에도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기술에 대한 환호가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전시는 10월까지.

– 대구신문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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