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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 정병국 작가 개인전…갤러리 분도 30일까지

정병국 작 ‘Tattoo in Scarlet’

정병국 작 ‘Black, Red’

경계의 해체 통해 새로운 공존 찾는다
비너스 석고상·한자 등 한 화면에
화가는 존재와 존재 연결자 역할
연관성 없는 대상들 연결로 공존
기존 질서 포기 무한한 자유 의미
이질적 존재 조합은 긴장감 촉발
개체들 간 조화 통해 균형 찾아가


현대사회는 초연결의 시대다. 연결하면 돈이 되고, 힘도 커진다. 초연결의 전초기지인 인터넷 플랫폼의 비약적인 발전은 현대사회에서 연결이 가지는 위상을 증명한다. 갤러리분도에서 개인전이 한창인 정병국 작가 작업의 출발은 연결이다. 동료 교수와 수출용 박스에 새겨진 글자, 비너스 석고상과 새와 한자, 식물과 남자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한자를 한 화면에 연결하며,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정립해간다. 그에게 연결은 곧 관계맺기를 의미한다.

“의미적으로나 시공간적으로나 유사성이 없는 존재들을 ‘연결’이라는 주제에 의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나게 됩니다.”

“10년 전에 어디서 돌을 하나 주워 집에 두었는데, 어느 날 막대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둘이 만나면 그림이 되겠다 싶어 만나게 했다”는 그의 말처럼 연결되는 존재들 사이에 의미적인 맥락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포착된 대상들을 무계획적으로 연결한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화가인 자신을 연결자, 즉 중매쟁이로 인식한다.

“화가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존재와 존재를 엮어주는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초연결 시대’라는 현대사회의 핵심 가치를 그가 스티브 잡스의 일화로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고 강연을 하게 됐을 때 한 학생이 그에게 “당신의 천재성을 어디서 나오느냐?”고 질문했고, 잡스는 망설임 없이 “관계(connection, 연결)”를 언급했다고 한다. 작가 역시 관계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뭔가 새로운 발전이 나왔다고 하면 그것은 관계에 대한 많은 시도들의 결과라고 보았어요.”

화가인 그가 연결을 실천하는 방법은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서다. 그는 각각의 개체들을 하나의 화면에 모으는 것으로 연결을 실천한다. 이때 화면에는 하나의 흐름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무질서다. 그는 일정한 규칙이나 질서를 염두에 두기보다 무작위적이며 무계획적으로 개체들을 연결한다. 이 경우 연결된 존재들 사이에 그 어떤 의미적인 교집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상 자체에 그 어떤 의미도 읽히지 않길 바라며 작업해요. 글자의 경우 독해력을 떨어트리기 위해 거꾸로 쓰기도 하죠.”

무의미적인 연결은 이미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농경시대와 달리 현대사회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인식하는 현대사회의 초연결성이다. ‘연결’이 중요한 시대지만 그에게 ‘연결’은 방법론일뿐, 목적은 아니다. 그는 방법적인 측면보다 내용적인 면에 주목한다. 연결로 획득되는 사람, 물건, 가치 등 유무형의 자원들을 목적으로 한다. 그 자원들이 돈이나 권력으로 환원된다. 화가인 그에게 연결은 좀 다른 의미의 자원이 된다. 그에게 연결은 곧 “공존”이다. “제 화면에 연결된 대상들은 아무 연관성이 없지만 공존이라는 개념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화면에서 개체들의 개별성은 그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이 경우 “개체의 존재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인간은 종교나 과학, 철학에 기대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획득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존재의 의미는 ‘실존’과 ‘공존’ 외에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의식하고 행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면 ‘실존’과 ‘공존’만 남는다고 봐요.”

그는 공존의 가치가 급부상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스터 모더니즘 이후의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포스터 모더니즘은 비역사성, 비정치성, 주변적인 것의 부상, 주체 및 경계의 해체, 탈장르화 등의 특성을 갖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를 말한다. 그는 건축에서의 노출 콘크리트나 창고같은 마트 등의 개념에서 우리시대의 경계의 해체를 발견한다. “저의 미술도 경계의 해체를 추구하고, 그것은 ‘공존’을 통해 구현됩니다.”

‘공존’은 그의 화면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대담한 화면, 푸른빛의 절제된 색조, 간결한 형태, 기념비적 육체 등으로 표출된다. 이때의 이미지들은 완벽하게 묘사되지 않아 미세한 결핍이 존재한다. 복잡한 현실이 얽혀있는 듯 하지만 막상 화면은 침묵으로 잠식된다. 현실과 초현실의 중간지대를 보는 듯 미묘하다. “관객들은 언젠가 본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기시감(旣視感)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억과 자연, 역사와 현실 속의 이미지들을 조합한 그의 화면 속 정서는 긴장감이다. 개체들을 맥락없이 연결한 결과 획득한 정서다. 이절적인 존재들의 조합은 긴장감을 촉발하고, 그 긴장감은 의식의 촉을 오히려 활성화시킨다. 뻔한 것보다 뻔하지 않은 것에 신선함을 느끼거나 호기심이 충천하는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건드린 결과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 공존하듯, 개체들이 교차되는 저의 화면에서도 공존의 가치는 선명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공존’은 개체들의 결합으로 존재감을 높여가지만, 그는 그 어떤 개체도 힘의 우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개체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균형상태라고 해서 반드시 고요함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부드럽게 흐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공격적이기도 하다. “군인에게 평화로운 시대만 지속된다면 존재의미가 희박해질 수 있습니다. 배우가 무대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영광도 없겠지요. 평화롭지 않은 균형도 때로는 더 큰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입춘대길’, ‘DREAM 1987 JUNG’, ‘DREAM’, ‘Black, Red’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 분도 정병국 개인전은 30일까지.

대구신문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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