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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Jeong Jeum-sik

2017. 7월 10일 - 2017. 7월 29일

시작을 돌아보다  EARLY WORKS 1970-1990 my beginnings

갤러리 분도는 한국화가 김호득의 개인전 <산 산 물 물>을 오는 3월26일부터 벌인다. 서울대 동양화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40년 동안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온 김호득은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김호득 작가는 먹과 붓과 종이로 이루어지는 동양화의 전통 재료와 자연의 일부를 그림에 옮기는 정신적 면모를 계승하는 동시에 동시대 미술의 혁명적인 파격을 독창적으로 이룬 화가다. 이번 개인전 또한 그가 시도해 온 수묵의 현대적 해석의 새로운 성과를 공개한다. 수묵화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작업은 동양화와 서양화, 평면과 입체, 구상과 추상, 과거와 현재 같은 일반적인 개념 구분을 지워버리고, 말 그대로 현대 미술가 보여주는 모든 면모를 실험중이다.

이처럼 실험적인 태도를 가졌음에도, 김호득의 작업은 매우 일관되거나 규칙적인 자기만의 틀 속에서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이미 알려지거나 이전에 공개된 작업을 새로운 작품으로 공개하는 동시에,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거나 새롭게 구상한 시도를 작품화하여 선보이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번 <산 산 물 물>전 또한 이와 같은 전시 패턴에 충실한 과정을 지녔다. 작년 서울 “파라다이스 집” 프로젝트 이후 갤러리 분도에서 다시 벌이는 개인전에서 그는 수묵 작업과 캔버스 작업, 그리고 대규모 설치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갤러리 분도의 1층 다목적 전시 공간에는 광목 천 위에 수묵으로 완성한 드로잉 작업을 설치한다. 강한 필력이 그대로 새겨진 수묵화는 획의 강약과 구도, 시간과 즉흥성의 조합을 보여주며 김호득 작가의 근원을 드러낸다. 2층 전시공간에는 굉장히 거대한 벼루를 재현한 구조물 속에 먹물이 채워지고 그 위에 미세한 움직임을 드러내는 질료로 완성되는 인스톨레이션 작업이 시도된다. 그 규모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에 비례하지만 상업 화랑이 추구하는 효율성과 이율배반적인 면을 드러내면서, 그 자체가 현대미술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3층은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덧대어 완성한 평면 작업으로 채워진다. 특히 여기에는 새롭게 선보이는 연작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산등성이와 계곡,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물길과 폭포를 떠올리게끔 하는 형상이 주를 이룬다. 전시 제목인 전시 제목인 <산 산 물 물>은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산이 반복되어 겹쳐 그려지면서 그 세세한 요소 하나하나를 쫒아감과 동시에 전체 그림의 화폭 속에 조망된 커다란 세계를 담아낸다. 이러한 미시와 거시의 통합은 이제 거장의 길에 들어선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

Criticism

에포케의 선언 :
정점식 학술토론 발표를 대신하여 (2017년 7월)

극재 정점식의 개인전을 화랑에서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준비하면서, 나는 선생처럼 빛나는 영예가 주어진 작가에 대한 조명을 의미심장하지만 그렇다고 과장되지는 않게 보여주고 싶다. 선생이 걸어간 예술의 길, 그리고 그에 대한 합의된 평가를 소개하려면 이 글의 분량은 훨씬 늘어난다. 난 어디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찬사어린 문구를 굳이 여기서 재인용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 단출한 전시안내문 혹은 선언문을 읽는 여러분이라면 이미 그런 지식을 먼저 이해한 의미해석 공동체의 일원일 가능성 또한 크지 않나? 상당히 주관적인 견해에서, 정점식의 회화가 드러내는 가장 탁월한 면모는 대상의 무심한 윤곽을 화폭 위에 붙드는 힘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주목하거나 아니면 미처 못 했거나 간에 작가가 가진 힘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화단에 크게 작용하면서 후배 화가들이 가지는 원칙과 실용적인 기법에 영향을 주었다. 동시대에 나타나거나 혹은 잠재된 회화적 준거가 되어 현대 미술을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그의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벽이나 상징물처럼 굳은 채로 서있다. 선생에 관한 평가는 이제 일종의 의례적인 언술이 되어서 반복되고 있다. 내가 몸담은 예술 환경에서 마음을 열고 교류하는 평론계와 언론계 몇몇 동료들의 일치되는 의견이 뭔가 하니까, 작고 작가 혹은 원로 작가 회고전 형식의 전시 기획에 빠지지 않는 일종의 답답한 흐름이 있다는 점이다. 새로울 게 없는 바이오그래피와 레퍼런스의 소개는 제사상 앞에서 읊는 축문과 같다. 물론 2017년은 극재 정점식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의 연대기만으로 우리가 선생의 과거를 제례적(ritual)인 행사로 치르고 지나가기에는 시급한 숙제가 많다. 기왕 한 세기의 끝을 맞았다면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할 때가 왔다.

많은 미술인들이 선생을 등불처럼 바라보는 경향과는 다르게, 나는 그 등대 빛이 지나간 어둠의 가장자리를 보려한다. 내가 미학자나 미술사학자가 아닌, 흔히 사람들이 미술제도론 연구라고 부르는 분야에 가까운 사회학자이기 때문에 선생의 작품에 내재한 실증적 근거를 따져 물을 수 없다. 그렇게 미술학계에서 자료화시킨 근거조차도 서구미술과 비교미술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30년 내지 50년 뒤에 처진 모방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선생의 작업을 관통하는 시기적 정의는 일본을 통한 서구문화의 습득이었다. 근대 일본문화예술의 기초가 서구 텍스트의 번역과 축음기 보급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작가 정점식의 미술세계 또한 이와 같은 궤도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적 사실을 외면한다면 정점식 회화에 대한 학술적 평가는 공허한 신비화 속에 갇혀 버릴 우려가 있다.

정점식에게 새로 다가온 100년은 미술학계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미술시장의 평가도 균형을 맞출 시기다. 미술을 둘러싼 세속적인 사정은 화랑업계만 집착하는 게 아니다. 예술에 대한 금전적 평가와 미학적 평가는 서로 보완적인 위치로 꼬여있다. 예컨대 어떤 연구 주제라도 돈이 안 되거나 정치적 파급력이 적으면 연구자가 달려들지 않는다. 학자들은 개인 사업자가 그런 것처럼 좀 더 많은 연구지원비와 그걸 통한 산출물로서의 연구 성과, 그리고 명예를 원한다. 그동안 작가 정점식에 관한 미술(학)의 접근은 관례적으로 치러지거나 헌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정점식이라는 큰 산을 건드림으로써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곧장 교수가 되어야 하고, 학술지원비가 집행되어야 하고, 작품이 판매되고 경매와 같은 2차시장에도 신뢰할만한 수치가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한 조건이 아직 덜 갖추어졌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일단 선생의 작품에 층을 쌓은 고상하고 두터운 색감과 앞서간 의식이 장식적인 그림에 익숙한 다수의 취향에 닿지 못한 점이 있지만, 이게 딱히 선생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은 아니다. 이보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모순 중 하나인 지역 불균형 현상이 지난 세기의 대 작가에게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본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책임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서 작가가 지역의 담론 안에 머무는 경향은 어느 정도는 누군가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것은 예컨대 정점식 선생을 대구 예술에서 하나의 깃대처럼 세워두고 대표 콘텐츠로 소모시키는 행정이다. 한 작가를 지역 대표 작가로 띄울수록 그가 가지는 보편적인 미덕은 가려지는 걸 왜 모를까.

또 하나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바로 후배 작가나 교수들이 가진 대가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다. 사실 그들은 금방 말했던 의례적인 기념 프로그램을 짊어지고 가는 집단이다. 문제는 이들이 극재의 예술관을 재생산하는 입장에서 가치 전승을 아무리 잘 수행하더라도 현재 미술대학 학생들과 젊은 작가들에게 정점식은 지나간 시대의 역사일 뿐이란 점이다. 특히 미술의 과업이 창작 활동 그 자체만큼 인터넷이나 종이문건 자료를 통한 전후 과정의 떠들썩한 노출이 중요해진 지금, 차세대 예술가들에게 극재는 큰 매력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당장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이르고, 동시대 미술의 작업에 레퍼런스가 되지도 못하는 세대의 예술가들은 현재로서는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일반 역사학은 이처럼 근접한 과거사에 대한 조사방법론을 구축하고 있는데, 연구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오류를 모두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자. 선생이 활동하던 시대에 그의 작업 태도는 가장 앞선 대열에 있었다. 예컨대 국전을 거부하고, 단순한 재현적 조형에만 가치를 두던 화풍과도 거리를 둔 작가들이 교류하며 전람회를 벌인 일이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정점식은 서구에서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 살롱 문화의 끝자락에 서 있던 예술가다. 선생이 남긴 여러 글에는 이와 같은 시대 상황 속에서 자기규정을 선언한 대목이 보인다. 그 선언에 대한 2차적 질서의 관찰자인 나는 “에포케의 선언”을 제시한다. 이 선언은 사실 소박하다. 에포케(epoche), 현상학에서 공유하는 인식의 판단중지란 건 다름 아닌 지금까지 극재의 미술을 둘러싸고 심사숙고를 거듭한 모든 평가와 재평가에 대한 일시적인 멈춤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의 회고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은 큰 미술관도, 비엔날레도 아닌 화랑이다. 우리가 대단한 미술의 주체는 될 수 없지만, 지난 시대의 한 작가의 발자취를 새로운 시대의 네트워크 속에 새길 준비는 하고 있다. 물론 그 출발은 여기 남아있는 여러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HIBITION INFO
  • Artist :정점식 Jeong Jeum-sik
  • Date : 2017. 7월 10일 - 2017. 7월 29일
  • Location :GalleryB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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