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비가(Elegy),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호두나무가지, 작은북, 아두이노, 거리센서, 2022.
시작은 그의 집 마당에 있는 나무 가지치기에서부터였다. 나무를 수많은 벌레와 미생물들이 서식하는 위대한 존재로 여기는 작가와 달리, 이웃은 나뭇가지가 조금만 담을 넘어도 불만을 표했다.
결국 그는 전지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작업하는 동안 이웃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 자리를 비운 사이 생겼다. 이웃이 전지작업을 일일이 간섭하는 바람에 전지 전문가가 약속한 것보다 훨씬 심하게 나뭇가지를 베어버린 것. 흉측한 몰골의 정원수를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무너져버렸고, 후유증도 꽤 오래갔다.
갤러리분도(대구 중구 동덕로 36-15 3층)에서 10월 8일까지 전시 중인 김희선 작가 개인전 ‘비가'(悲歌·Elegy)의 모티브가 된 일이다. 작가는 그렇게 훼손된 나뭇가지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 작품들을 제작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게 뻗은 호두나무 가지를 쥔 손이 벽면에 걸려있다. 나무를 수호하지 못한 데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전시장 안에는 작은 북들이 놓여있다. 북에는 작가가 마당에서 주운 가느다란 호두나무 가지들이 달려있는데, 관람자의 눈길에 대답이라도 하듯 돌아가면서 북을 두드린다.
박소영 전시기획자는 “북이 두드리는 리듬은 생성, 무한, 변화 등 이번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들을 모스부호로 치환한 것”이라며 “북이 울리는 소리는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호두나무를 3D 모델링해서 작업한 영상도 전시됐다. 마치 나무 둥지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느낌이다. 나뭇가지들이 무한히 뻗어나와 커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인간의 신경조직과도 흡사하다.
김희선 작.
작가는 기존에 인간과 자연, 기술의 상호연관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에 서있는 셈이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기울게 된 호두나무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사회·정치적 관계, 인간 중심적 욕망으로 인류의 삶과 환경은 비틀어진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하지 못하고 변위돼야만 한다. 그러나 살아나고자 하는 자연의 힘은 위대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시기획자는 “이번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으로 훼손된 자연이 스스로 원상 복구하려는 자정(自淨)능력마저 우리가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 김희선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터를 취득하고 쾰른 미디어아트아카데미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17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영남대 트랜스아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매일신문 이연정 기자 lyj@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