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개인전 전시 전경.
푸른 회화로 한국미술계에 독특한 화풍을 구축해온 정병국 초대전이 오는 30일까지 갤러리분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10년 전인 2012년 지역에서 대규모 프로젝트 ‘몸’ 전시 이후 작가의 미발표작 11점을 선보인다.
정병국의 회화는 완벽한 묘사라기보다 어느 정도까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이미지 재현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그의 그림에는 미세한 결핍이 존재한다는 평을 받는다.
또 언젠가 본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기시감(데자뷔)을 경험하게 만든다. 작가 개인의 지난 기억을 상징하는 푸른 빛 배경과 어울려 그려낸 인물 혹은 사물이 배치돼있는 대상은 아주 단순한 구조지만 오묘한 집중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일상 속에서 작가가 경험했던 일들을 깊은 사유와 되새김을 통해 머릿속에서 언젠가, 어디에선가 마주쳐 지나온 누군가와 사물 또는 배경에 대한 기억을 각각 끄집어내어 재조합해 그림을 그린다.
이에 그의 그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 현실과 비현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매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와 글씨가 만나 새로운 회화를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에게 선과 악이 함께 있듯 동질성이 없는 물체와 개체를 함께 교차시킨다.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각자 고유의 형태들이 어우러져 독창적인 화면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작업과 달리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다.
특히 5m의 대작 ‘Black, Red’ 작품은 마치 영화 스크린 같은 거대한 화면의 왼편에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이 흑백으로 담담하게 정지돼있는 화폭과 반대로 오른편에 빨간색으로 쓰인 역동적인 서체의 아름다움이 대비적으로 구성된다.
갤러리분도 정수진 큐레이터는 “작가는 이미지와 무관한 글씨의 출현으로 기존의 본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긴장된 갈등 관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며 “이미지와 글씨의 관계를 연결해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가 이전에 맛보지 못한 심리적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의 뛰어난 시각적 화면은 감상자에 무한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일보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