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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 박동준상 수상자 민성홍 개인전…공중에 떠 있는 건 불안정 극복 위한 의지 표출

박동준상을 수상한 민성홍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분도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내달 8일까지 갤러리 분도
이주하며 버려진 가재도구 수집
색칠하고 가공·조합 ‘치유 과정’
작가 행위 통해 밝은 기분 뿜어내
대학 때부터 야외 설치미술 몰두
미국 유학 생활했지만 ‘국내 신인’
10여년 지나자 ‘브릴리언트 30’ 

인간이 이주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구별에 태어나는 순간, 인간의 이주는 본격화된다. 태어남 자체가 미지의 세계에서 지구별로의 이주를 의미한다. 살아가면서 이주는 더욱 현실화된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이주를 강요받는다. 죽음이라고 해서 이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를 기다리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2023 박동준상을 수상하고 갤러리 분도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민성홍 작가 작업의 개념적인 출발은 ‘이주’다. ‘이주’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불안’이라는 정서와 궤를 함께한다. 변화하는 환경 속의 일원으로 기능한다는 의미가 ‘이주’라는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 삶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환경이나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객체로서의 삶은 불안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다. 

민성홍 작

이번 전시에서 그는 가변적 신체 구조물 작업 ‘Skin_Layer’ 연작과 ‘Circulator’ 영상 작품을 통해 ‘이주’로 점철된 인간의 불안정한 삶을 서술한다. 작품들이 공중에 떠있거나 불안정하게 걸쳐져 있거나, 바퀴가 달린 형식을 취하는데, 모두 불안한 정서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는 경쟁을 부추기고, 승자와 패자를 양산한다.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개인은 상처받고 절망한다. 그의 관심사는 사회적인 생태계의 변화와 개인과의 관계성에 집중된다. 작가 자신과 타인 또는 집단 그리고 사회 사이의 관계가 개인적 삶에 깊숙이 개입되는 불안한 삶의 순환 과정을 작품으로 서술한다. “사회적인 생태계의 변화가 한 개인에게 어떤 연향을 미칠 수 있는고, 어떤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는가”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전시작 ‘Skin_Layer’는 공중에 불안정하게 떠 있는 형식을 취한다.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사회 생태계에 대한 은유다. 그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삶은 부유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더 가혹하다. 일이 있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부유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불안정한 삶의 편린들을 목도한다. “부유하는 삶이 비단 젊은층만의 이야기일 수는 없었어요.”

그가 개념적으로 꺼내든 ‘이주’라는 단어에서 짐작하듯,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불안정함 자체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절망에만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불안정한 생태계를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체념이라기보다 극복을 위한 의지의 표출에 해당된다. 그런 인식 이면에 “부단한 노력으로 불안정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그가 바라마지 않는 세상은 “더 안정적인 생태적 환경”이다.

작업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누군가의 이주로 버려진 가재도구를 수집하는 단계다. 식탁이나 의자, 옷걸이 등 수집품의 종류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이 단계에서는 수집품을 사용했던 누군가의 행위와 흔적이 사유의 대상이 된다. 타인의 삶에서 사용됐던 도구들이고, 비록 버려진 것을 수집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체취가 배어나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2번째 단계에서 작가적 행위가 시작된다. 수집한 물건들을 절단이나 파편화, 색칠하기 등의 작가의 행위를 통해 변형, 즉 가공된다. 가공 과정에 그의 내면에 축적된 삶의 궤적들이 자연스럽게 이입된다. 타인의 삶의 흔적에 작가 자신의 삶의 흔적이 중첩되는 것이다. 그는 가공이라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상처의 치유”다. “오염되고 훼손된 물건들은 갈아내거나 색을 칠하는 저의 행위들이 덧대지는데, 저는 그것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과거와 현재, 작가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맺음이 본격화된다. 타인의 과거의 삶에 현재 작가적 상상과 재조합적 행위가 더해지며 버려진 사물들이였던 수집품들은 예술작품으로 환골탈태한다. 이때 시각적인 형상은 신체적인 형태를 띤다. 식탁이나 의자의 다리는 인체의 팔다리나 척추가 되고, 둥근 형태의 기물은 얼굴이 된다.

신체적 형태는 이주하는 인간에 대한 오마주처럼 다가온다. 버려진 사물로 출발했지만 작가적인 행위에 의해 가공되고 조합된 형태에서 밝은 기운이 배어난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참담하지만 즐거움과 유희적인 측면도 있고, 설사 참담하더라도 극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어요?”

 

민성홍 작

그의 미술은 출발부터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 맞춰져 있다. 바깥에서 작업의 소재나 개념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런 성향은 대학 시절부터 발현됐다. ‘바깥미술회’ 활동을 통해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야외 설치미술 작업에 몰두했다.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것. 유학 시절부터는 관심의 영역을 더 넓혔다. 얼음, 목탄가루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거나 소멸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 등 시간성과 물성에 천착했다.
이주라는 개념과 버려진 가재도구라는 소재는 바깥의 산물이다. 귀국 후 그가 30여년간 거주했던 안산의 빌라촌이 재건축 대상지가 되거나 귀국 후 자리를 잡은 작업실 인근의 오피스텔의 젊은이들이 가재도구들을 버리고 이주하는 모습을 보며 전에 없던 상념에 사로잡혔고, ‘이주’가 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누군가의 희노애락이 묻어있는 사물들이 허물처럼 버려진 모습에서 사회의 외부 작용인 재건축으로 위치가 이동되는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남겨진 사물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주변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른 관계성을 얘기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민성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분도 전시장 전경. 갤러리 분도 제공

분도 전시 제목이 ‘Receiner and Tranmitter(수신체와 발신체)’다. 그의 분신인 작품이 곧 수신체이자 발신체라는 의미다. 작업의 재료를 수신하고 그에 의해 재가공, 재창조되어 발신체가 된다. 제목 ‘수신체와 발신체’ 속에 작업이 가지는 다양한 관계 공학이 숨어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영상 작업인 ‘Circulator’에 한신체에 대한 그의 철학이 묻어난다. 안테나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제작했다. 2012년 무렵에 40대였던 그는 국내에서 신진작가 취급을 받았다. 미국 유학 후 10여년 간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이력이 국내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고, 그를 아는 미술계의 실력자들은 드물었다.

당시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각오로 대부도에 위치한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당시 안테나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난청지역인 섬에서 라디오 전파가 잡히는 장소를 찾아 안테나를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다. 당시 안테나는 국내 미술계의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그의 모습에 대한 은유였다.

“40대의 작가가 미술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예민한 안테나였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안테나는 “40대 작가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예민한 촉수이자 수신체였던 것”이다.

버려진 오브제로 인체를 구조적으로 형상화한 이번 전시작 ‘Skin_Layer’에는 수신체와 발신체라는 개념이 겹쳐진다. 그가 “작가로서 하는 작업 행위가 외부의 사물, 상황들을 작업실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안테나와 같은 수신체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행위에는 발신체의 역할도 겹쳐지는데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발신체로 기능한다는 지점에서 그렇다.

“바깥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작업실 안으로 들이고, 저의 작가적인 행위를 통해 외부로 확장해 갑니다. 앞으로 공간의 경계를 더욱 확장해 가고 싶어요. 저와 타인의 공간 사이의 벽을 얇게 해서 경계를 좁히는 것이죠.”

추계예술대 서양화 전공을 거쳐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회화 전공으로 졸업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몬타나 및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활동했던 그였지만 귀국 후에는 신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중요 작가로 우뚝 섰다. 그는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서 다수의 기획전을 가졌으며, 2003년 샌프란시스코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수여한 더 머피 앤 코도간 펠로우십 인 더 파인아츠상을 수상했다. 현대차가 2014년 시각예술을 주도하는 3040세대 작가 30명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프로젝트인 ‘브릴리언트 30’에 선정됐으며, 2023 박동준상의 주인공이 됐다.

“존경하는 작가인 뮌 듀오에 이어 제가 박동준상을 수상하게 돼 너무 영광입니다. 특히 매력적인 하얀 공간인 분도라는 전시장에서 새로운 의미 있는 전시를 구현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

대구신문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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