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비경을 탐구하는 최상흠 작가
빛의 파장을 색으로 응집하며 진화하는 작품세계 눈길
건축용 레진몰탈로 개념화되지 않은 색의 비경(秘境)을 탐구하는 최상흠 작가가 23일부터 오는 10월18일까지 갤러리분도에서 열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물감(物監)을 풀다’로 명명된 이번 전시에서는 빛의 파장을 색으로 응집하며 진화하는 최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갓 출시한 대형 평면TV의 화면처럼 오묘한 색상과 손자국 하나 없는 매끄러운 질감으로 보는 이에게 압도적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그의 작품이 기계적 공정의 산물이 아니라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고 레진몰탈과 합을 맞춘 지난한 작업의 결실이라는 데서 놀라움은 배가 된다. 또한, 그의 전작들은 레진몰탈을 불투명하게 사용한 탓에 지지체인 패널이 겹겹이 누적시킨 레진몰탈에 묻혔다. 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에서는 ‘투명함’이 도드라진다.
이를 위해 레진몰탈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지지체도 나무가 아닌 아크릴을 사용했다. 여기에다 전통적 채색기법인 배채법(背彩法)을 응용해, 아크릴 틀을 뒤집어 안쪽에도 레진몰탈을 채웠다. 또한, 사각의 틀 가장자리에 조성한 틈에도 레진몰탈을 넣었다. 이때 정면과 안쪽 면의 색상과 틈새의 색상에 차이가 생긴다. 그 미세한 차이가 작품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에다 4~8개 면으로 구획된 아크릴 틀의 기하학적 구조 역시 특유의 조형미를 선사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 낸다. 이와 더불어 눈여겨봐야 할 점은 투명도에 따른 빛의 투과율 상승으로 색감이 밝아진 것이다. 게다가 사각의 테두리 틈에 더해진 색상은 빛이 측면을 투과하면서 미묘한 색상차를 연출한다. 이로써 우리는 규격화·개념화된 ‘컬러칩’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비색의 진경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일체의 부정성이 제거된 매끈한 정면과 달리 추방해야 할 부정적 요소로 구성된 측면은 레진몰탈이 겹쳐진 자국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갤러리분도 관계자는 “최상흠의 작품은 장구한 색의 투쟁사를 배면에 깔면서 오묘한 색의 비경으로 도약한다. 관습적 작업매체에서 벗어나기, 지지체 측면 자국의 부정성 노출, 개념화되지 않은 색채 탐구 등은 작가가 미술사 안팎의 경계에서 작품세계를 모색하고 구축하고 있음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